탁월함의 근원

이스터 엘치스 하우스: 현명한 투자

Macallan의 정신적 보금자리의 내면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우정, 역사, 지식 또는 목표와 같이 간직해야 할 것과 놓아 버려야 할 것을 배웁니다. 인생이란 결국, 의식적인 선택 그리고 희생과 다름 아닙니다. 스파이사이드의 Macallan Estate에 있는 이스터 엘치스 하우스는 우리가 유지하고, 투자하고 가치를 부여하기로 선택한, 우리 역사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입니다. 묵묵하게 변함 없이 대지를 지키는, 지금은 유명해진 이스터 엘치스 하우스이지만 한때는 우리의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던 적도 있습니다.

존재감 없는 주택에서 작은 탑이 달린 저택으로

입구 바로 위 돌에 새겨진 날짜에서 우리는 이스터 엘치스 하우스가 1700년부터 존재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형태로든 이 대지 위에 건물이 들어선 것은 1543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엘치스의 캡틴 존 그랜트(Captain John Grant)의 휴가철 별장으로 지어진 이 주택은 연어 낚시로 유명한 그림같은 스파이 강 위 언덕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의 손자(존이라는 이름을 물려 받은)가 사유지를 상속받았고 그는 그 주택을 1759년 핀드레이터 앤 시필드 백작(Earl of Findlater and Seafield)에게 매각합니다. 시필드 가문이 그 사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이스터 엘치스의 터줏대감인 그랜트 가문의 일원인 루이스 그랜트 경(Sir Lewis Grant)이 나중에 시필드 가문으로부터 그 주택을 임차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문들이 이스터 엘치스 하우스를 거쳐갔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 그 소유권은 시필드 가문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1820년 알렉산더 리드(Alexander Reid)가 시필드 가문으로부터 집과 농장을 임차할 때까지 스파이사이드의 부동산 거래 기록은 전무했습니다. “가장 앞선 농업 기술을 적용하는 것으로 현지에서 잘 알려진” 사람인 리드는 스파이사이드 구석에 자리잡은 이 조용한 대지에 대해 더 큰 비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4년 후 그는 지주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그 땅에 최초로 허가를 받은 증류소를 설립했습니다. 과거에 그 땅에서 오랫동안 위스키를 증류해서 목동들이 중부 스코틀랜드의 가축 시장을 향해 강을 건너기 전에 그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이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그 증류소에는 인근의 오래된 그리고 폐허가 된 교회와 과거 교구의 이름이었던 ‘Macalla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1847년 사망할 때 즈음에는 리드는 자신의 위스키가 가진 '탁월한 품질'로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격변의 시대

그 후 증류소의 주인들은 여럿 바뀌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격변의 시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곳을 돌봐왔던 로데릭 켐프(Roderick Kemp)와 하빈슨 가족(Harbinsons)과 같은 흔치 않은 인물들에 의해 형태를 갖춰갔습니다. 이 당시 이 웅장한 낡은 주택의 운명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1960년대 Macallan이 구입을 했을 때는 철거를 생각할 정도로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철거는 고려할 만한 선택사항이었습니다. 그 주택은 증류소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복원을 하려면 상당한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름 정당성과 합리성을 지닌 더 쉬운 선택을 마다하고 대안을 선택했습니다.

이스터 엘치스 하우스는 그 겉모습과 달리 투자할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스파이사이드의 대지의 한 구석에서 이어져 온 역사의 작은 편린들을 잘 드러내 주는 존재이며,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종류의 지혜를 위한 토대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의 정신적 보금자리이며 오늘날 우리 브랜드와 불가분의 관계인 이곳은 지금까지 우리를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나갈 투자와 선택을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